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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롬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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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르빈 롬멜은 1891년 독일에서 태어난 군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그는 뛰어난 전술과 지휘 능력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중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활약했다. 롬멜은 히틀러의 총애를 받았으나,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자살을 강요받고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독일 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전후 그의 행적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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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롬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42년 에르빈 롬멜 원수
1942년의 에르빈 롬멜, 원수
본명에르빈 요하네스 오이겐 롬멜
별칭사막의 여우
출생1891년 11월 15일
출생지독일 제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하이덴하임
사망1944년 10월 14일 (52세)
사망 원인강제 자살 (청산가리 중독)
사망지나치 독일 뷔르템베르크 자유인민주 헤를링겐
묻힌 곳헤를링겐 묘지
에르빈 롬멜 서명
군사 경력
소속독일 제국 (1911년–1918년)
바이마르 공화국 (1918년–1933년)
나치 독일 (1933년–1944년)
독일 저항운동 (1944년 5월–10월)
군종독일 제국 육군
국가방위군 육군
독일 육군
복무 기간1911년–1944년
최종 계급원수
지휘제7 기갑 사단
아프리카 군단
아프리카 기갑군
아프리카 집단군
B 집단군
주요 참전 전투/전쟁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아르곤 전투 (1915년)
마시불 레술루 및 오이투즈 전역 (1916–1917년)
카포레토 전투 (1917년)
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 침공
프랑스 공방전
아라스 전투 (1940년)
릴 포위전 (1940년)
북아프리카 전역
Operation Sonnenblume (1941년)
투브루크 공방전 (1941년)
Operation Brevity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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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린 협곡 전투 (1943년)
메드닌 전투 (1943년)
노르망디 전투 (1944년)
훈장1급 철십자장
푸르 르 메리트
다이아몬드 장식이 된 철십자 기사 십자장
개인 정보
배우자루치아 마리아 몰린 (1916년 11월 27일 결혼)
자녀게르트루트 슈템머
만프레트 롬멜

2. 생애와 유년 시절

에르빈 롬멜은 1891년 11월 15일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하이덴하임안데어브렌츠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772] 아버지는 교사였고 어머니는 '루츠 가문' 출신으로, 모두 개신교 신자였다. 롬멜은 유년 시절을 평안하게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772]

롬멜의 가족은 군대와 거의 관련이 없었으며, 군부에 유력한 인맥도 없었다.[221] 또한, 교양 시민 계급 출신이라는 점은 귀족주의적인 독일 육군(Deutsches Heer)에서 결코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다.[222] 아버지 에르빈은 하이덴하임의 실과 김나지움(Realgymnasium)의 수학교사였으며, 롬멜은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214][215] 할아버지 또한 교사였다.[215][217]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수학자로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고,[214][215] 고향 하이덴하임에서는 상당히 존경받는 인물이었다.[218] 어머니 헬레네는 뷔르템베르크 왕국 정부 행정구청장이자 지역 유력자인 카를 폰 루츠(Karl von Lutz)의 딸이었다.[217][218]

롬멜에게는 형 만프레트(Manfred), 누나 헬레네(Helene), 남동생 카를(Karl)과 게르하르트(Gerhard)가 있었다.[214][218][220] 형 만프레트는 어릴 적에 사망했다.[214][218] 남동생 카를은 후에 치과의사가 되었고, 막내 남동생 게르하르트는 오페라 가수가 되었다. 누나 헬레네는 미술선생이 되었다.[773]

어린 시절 롬멜은 병약하고 조용한 소년이었다고 한다.[214][223] 누나 헬레네에 따르면, 롬멜은 피부가 하얗고 머리색도 밝아서 가족들로부터 "흰곰돌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214][218] 그러나 롬멜 자신은 "어릴 적에 자신의 정원이나 큰 정원에서 뛰어놀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다"고 회상하고 있다.[219]

1898년, 아버지가 아렌 실과김나지움(Realschule) 교장이 됨에 따라[218][224] 가족은 아렌으로 이사했지만, 아렌에는 초등학교(Volksschule)가 없었기 때문에 김나지움에 입학할 때까지 롬멜은 가정교사에게서 수업을 받았다.[224] 1900년에는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는 실과김나지움에 입학했다.[224] 처음에는 김나지움에서 저능아였고,[223][224] 게으르고 산만했다고 한다.[223][224] 독서에도 운동에도 관심이 없는 아이였지만, 10대가 되자 갑자기 활발해졌다.[223][224] 수학 성적이 좋아지고 스포츠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224][225] 또한 비행기 연구에 몰두하여 14세 무렵에는 친구와 함께 실물 크기의 글라이더를 제작했다.[217][221]

만 18세가 된 롬멜은 1910년 3월, 바인가르텐에 있는 '뷔르템베르크 왕실 제6보병 연대 국왕 빌헬름 1세 제124 보병사단'에 사관후보생으로 지원한다.[773] 롬멜은 원래 항공 기술자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그 길을 가지 못했다.[773]

3.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롬멜은 1915년 프랑스 전선을 시작으로 루마니아, 이탈리아 전선 등지에서 싸웠다. 그는 부하들을 잘 통솔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775] 롬멜은 이들 전선에서 여러 전투를 겪으면서 전략과 전술을 익혔고, 상황 변화에 따라 신속하게 대처하여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두 번에 걸쳐 심한 부상을 당했고, 오버르트난트(중위)로 진급하면서 1급, 2급 철십자장을 수여받았다.[775]

1917년에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불과 1개 중대병력을 이끌고 무려 9,000명의 적군을 포로로 잡는 등 눈부신 전공을 세웠고, 그해 10월, 이탈리아의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마타주르 산 요새 습격에서 이탈리아 군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두며 큰 공을 세워 군인들에게 있어서 최고 권위의 훈장인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수여받게 되었다. 이 훈장은 처음에 다른 장교에게 수여되어 롬멜은 상부에 진정서를 제출한 이후에야 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776][777][778]

1917년 이탈리아에서의 롬멜 중위


롬멜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와 루마니아(특히 지우 계곡 제2차 전투) 및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투를 치렀다. 그는 강력한 사격으로 적 전선을 돌파하고 신속하게 진격하는 전술과 적의 후방에 신속하게 이동하여 측면 공격을 가해 전술적 기습을 달성하는 데 이 전술을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그의 첫 전투 경험은 1914년 8월 22일 베르됭 근처에서 소대장으로서였다. 당시 프랑스 수비대의 허를 찔러 롬멜과 세 명의 병사는 나머지 소대를 전진시키라는 명령 없이 그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1914년 9월과 1915년 1월의 활약으로 롬멜은 철십자훈장 2급을 수여받았다. 1915년 9월, 롬멜은 오버르트난트(중위)로 진급하여 신설된 알펜코르프스의 뷔르템베르크 왕립 산악 대대에 중대장으로 전속되었다. 1916년 11월 단치히에서 롬멜은 루치아와 결혼했다.

1917년 8월, 그의 부대는 헝가리와 루마니아 국경에 있는 요새화된 목표물인 코스나 산을 놓고 벌어진 오이투츠 제3차 전투에 참여하여 2주간의 힘든 고지 전투 끝에 함락시켰다. 산악 대대는 다음으로 이탈리아의 산악 지역인 이손초 전선에 배치되었다. 카포레토 전투로 알려진 공세는 1917년 10월 24일에 시작되었다. 3개의 소총 중대와 기관총 부대를 포함한 롬멜의 대대는 콜로브라트, 마타주르, 스톨 세 개의 산에 있는 적의 진지를 점령하려는 시도의 일부였다.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반 만에 롬멜과 그의 150명의 부대는 6명의 사망자와 30명의 부상자를 내고 81문의 대포와 9,000명(장교 150명 포함)의 포로를 사로잡았다. 롬멜은 지형을 이용하여 이탈리아군의 측면을 공격하고 예상치 못한 방향이나 적의 후방에서 공격하며 명령에 반하여 공격을 감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러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한 사례로, 기습을 당하고 전선이 무너졌다고 믿은 이탈리아군은 짧은 교전 후 항복했다. 이 전투에서 롬멜은 독일군, 그리고 나중에는 외국군이 채택하기 시작한 새로운 기동전인 잠입 전술을 개척하는 데 기여했다.

11월 9일 롱가로네 점령에서 선봉대 역할을 한 롬멜은 다시 한번 훨씬 적은 병력으로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독일군 전체 사단에 포위되었다고 확신한 이탈리아 제1보병사단(1만 명)은 롬멜에게 항복했다. 이와 마타주르에서의 활약으로 그는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1918년 1월, 롬멜은 하우프트만(대위)으로 진급하여 제64군단 참모직에 배치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무했다.

4. 종전 이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롬멜의 계급은 대위였다. 종전 후에도 군에 남은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사회주의 계열의 봉기를 진압하고 바이마르 정부를 지키는 데 기여했다.[777][778] 1920년 12월, 슈투트가르트 보병 연대 참모가 되어 8년간 복무했고, 1928년에는 아들 만프레트를 얻었다.[280][281] 1929년 드레스덴 보병학교 감독관으로 부임하여 사관후보생들을 가르쳤다.[777][778]

롬멜은 1920년 10월까지 제124연대에 남아 있었다. 당시 독일 전역에서 발생하던 폭동과 사회 혼란 진압에 연대가 관여했는데, 롬멜은 가능한 한 무력 사용을 피했다.[5] 1919년 콘스탄츠 호수의 프리드리히스하펜에 파견되어 친공산주의적인 선원들로 구성된 제32 내무 경비대에서 질서를 회복했다. 그는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이 점령한 인근 도시 린다우 공격을 거부하고, 시의회와 협상하여 외교적 수단으로 도시를 합법적인 정부에 반환하는 데 성공했다.[5] 이후 슈바벤 괴뮌트를 무혈로 방어했고, 루르 지역에 배치되어 적군의 불안 조장에 대처했다. 역사학자 라파엘 셰크는 롬멜을 침착하고 온건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평가한다.

로이트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롬멜은 "이 공화국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는 깊은 인상을 받았고, 소비에트식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독일을 바꾸려는 시도를 직접 경험했다. 이는 히틀러의 경험과 유사하며, 국가 통합의 필요성은 제1차 세계 대전의 결정적인 유산이 되었다. 브라이튼은 롬멜과 히틀러 모두 등에 칼 꽂히기 신화를 믿었지만, 롬멜은 문제를 유대-볼셰비즘이 아닌 경제적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1920년 10월 1일, 롬멜은 슈투트가르트 제13 보병 연대에서 중대장으로 임명되어 9년 동안 그 직책을 유지했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드레스덴 보병학교에서 교관직을 맡았고, 1932년 4월에는 소령으로 진급했다. 드레스덴에 있는 동안 그는 1934년에 출판된 보병 훈련에 대한 교본을 저술했다.

4. 1. 히틀러와의 만남

1933년 1월 30일 소령으로 진급한 롬멜은 베를린에서 정권 교체를 주의깊게 관찰하며 나치스 정당에 관심을 가졌다. 1933년 10월, 고슬라로 전근하여 17보병연대 3대대 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임명식 연설에서 '제국 총통이신 아돌프 히틀러의 특별한 능력'을 역설했는데, 이는 히틀러에 대한 '특별한 추종'보다는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후 독일 재건을 위해 '군대 정비', '군비 확장 정책'을 편 히틀러에게 호의적이었던 독일군 장교들의 전반적인 정서를 반영한 것이었다.[779]

1934년 7월, 고슬라 재임 중 롬멜은 돌격대 참모장으로서 에른스트 룀 쿠테타 사건을 계기로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8월 2일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 사망 후, 히틀러는 '총통'직에 올랐다. 그해 9월 히틀러는 고슬라를 방문했고, 롬멜은 의장대를 세워 히틀러를 맞이했다.[780] 1935년 3월 중령으로 진급한 롬멜은 히틀러를 찬양하는 연설을 했으나, 나치스 정권의 부정적인 측면도 인지했다. 그해 1월 포츠담 군사학교 교사 자리를 약속받고 10월 15일 '전술 교사'가 되었다.[773]

1937년 대령으로 진급한 롬멜은 제1차 세계대전 회고록인 '보병전술록'을 출간했다.[781] 1938년 3월 오스트리아가 나치스 독일에 병합되었을 때, 근처 비너노이슈타트 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1938년 2월 25일 히틀러 유겐트 연락 장교로 임명되었으나, 히틀러 유겐트가 '나치스의 군대 후진 양성 조직'일 뿐이라고 느껴 1938년 8월 사임했다. 1938년 10월 1일에서 10월 9일 주데텐란트 행진 동안 총통 지휘본부 지휘권이 그에게 임명되었다. 1939년 3월, 약 2주간 체코슬로바키아 행진과 메멜 점령에 총사령관 지휘를 맡으며 히틀러와 개인적으로 가까워졌다.[782]

1939년 8월, 롬멜은 소장으로 진급, 총통 지휘본부에서 히틀러 경호 경비대장으로 일했다.[779]

1934년 고슬라에서 히틀러 경호하는 롬멜.

5. 제2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롬멜은 제124보병연대에 복귀하여 벨기에 남부 프랑스 국경 근처 블레드(Bleid) 마을에서 첫 실전에 참가했다.[241][242] 롬멜은 극도로 지쳐 있었고 위통까지 겪었지만,[241][242] 프랑스군의 총격에도 불구하고 소대를 이끌고 돌격하여 프랑스군을 후퇴시켰다.[245] 이 과정에서 롬멜은 단 4명으로 20명 가까운 프랑스군 부대를 격파하기도 했다.[246] 하지만, 롬멜의 부대는 프랑스군의 포격과 숲 속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고, 많은 전우들이 전사했다.[247]

5. 1. 1939년 폴란드 전선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롬멜은 1939년 9월 첫째 주에 총통 행렬의 선두에서 장갑차를 타고 폴란드를 누비고 다녔다. 그는 히틀러의 보좌역할을 하는 경호대장이었기 때문에 16명의 장교와 274명의 군사들과 함께 수많은 군부대를 방문하는 히틀러의 신변을 보호하는 경호역할을 하였다.

폴란드에서의 히틀러(1939년 9월). 롬멜은 그의 왼쪽에, 마르틴 보르만은 그의 오른쪽에 있다.


롬멜은 1939년 8월 23일 소장(Generalmajor)으로 승진하여 히틀러 친위 여단(Führerbegleitbrigade)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9월 1일에 시작된 폴란드 침공 동안 히틀러와 그의 현장 지휘부를 경호하는 임무를 맡았다.[144] 레미에 따르면, 이 시기 롬멜의 개인 편지들은 그가 히틀러의 진정한 본성과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긴장 완화에 대한 신속한 평화적 해결을 예측하는 것에서부터 글라이비츠 사건(히틀러가 주도한 거짓 깃발 작전으로 침공의 구실로 사용됨)에 대한 히틀러의 반응("폭탄은 폭탄으로 보복될 것이다")을 승인하는 것으로 빠르게 변했다.[42][43][44] 히틀러는 이 작전에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종종 총통 특별열차(Führersonderzug)(총사령부 열차)를 타고 전선 가까이로 이동했다.[146] 롬멜은 히틀러의 매일 아침 전쟁 보고에 참석했고 그를 어디든 따라다녔으며, 전차와 기타 기계화 부대의 사용을 직접 관찰할 기회를 활용했다.[141] 9월 26일 롬멜은 베를린으로 돌아와 총통 관저에 그의 부대를 위한 새로운 본부를 설치했다.[146][149] 롬멜은 독일의 승전 퍼레이드를 준비하기 위해 10월 5일에 점령된 바르샤바로 잠시 돌아왔다.[34] 그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치 독일의 점령이 폐허가 된 도시 주민들에 의해 "아마도 안도감으로 환영받았을 것"이며 그들이 "구출되었다"고 주장했다.[24][49]

5. 2. 1940년 서부 전선

1940년 5월 10일, 롬멜은 제7기갑사단을 이끌고 프랑스 전선(서부전선)에 참전했다. 3일 뒤, 롬멜은 부대를 선두 지휘하여 뫼즈 강을 신속하게 건넜으며, 5월 16일에는 프랑스의 마지노 선에 도달하였다.[783] 그곳에서 상관인 귄터 폰 클루게 상급대장은 롬멜에게 돌파하지 말 것을 명령했지만, 롬멜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프랑스군은 롬멜의 전차 부대 기습에 당황했고,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1940년 6월 22일, 콩피에뉴 숲에서 프랑스와 독일 간 휴전 협정이 체결되어 독일이 프랑스 북부 지역을 점령했을 때, 롬멜은 전공을 인정받아 철십자장을 수여받고 중장으로 진급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8세였다.[773]

5월 20일, 롬멜은 아라스에 도착했다.[164] 헤르만 호트 장군은 롬멜에게 도시를 우회하여 영국군 주둔지를 고립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롬멜은 제5 기갑사단에게 서쪽, 제7 기갑사단에게 동쪽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했고, SS 사단 토텐코프가 양측을 호위했다.[13] 다음 날, 영국군은 아라스 전투에서 반격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철수했다.

5월 24일,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귄터 폰 클루게는 히틀러의 승인을 받아 진격 정지 명령을 내렸다.[13] 이 결정의 이유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다. 정지 명령은 5월 26일에 해제되었다. 제7 기갑사단은 계속 진격하여 5월 27일 에 도착했다.[13] 릴 공방전은 5월 31일까지 계속되었고, 4만 명의 프랑스 주둔군이 항복했다.

롬멜은 6월 5일 공세를 재개, 루앙 근처의 다리를 확보하기 위해 센 강으로 진격했다. 이틀 만에 100km를 진격한 사단은 루앙에 도착했지만, 3대의 프랑스 전차가 방어하고 있었다. 프랑스 전차들은 독일 전차 여러 대를 파괴했지만 결국 제압당했다. 이 저항에 격분한 독일군은 소방대의 진입을 금지하여 노르망디의 옛 수도의 상당 부분이 잿더미로 변했다.[14] 6월 10일, 롬멜은 디에프 근처 해안에 도착하여 호트에게 "Bin an der Küste"(해안에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6월 17일, 제7 기갑사단은 영국군의 추가 철수가 진행 중이던 셰르부르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단은 24시간 만에 240km를 진격했고, 이틀간의 포격 후, 프랑스 수비대는 6월 19일 항복했다.

6월 22일 프랑스와의 휴전 조약이 체결된 후, 롬멜의 사단은 예비대로 배치되어 재장비를 받았다.

5. 3. 1941년~1943년 북아프리카 전선

1940년 6월 10일, 나치 독일의 공세에 힘입은 이탈리아는 영국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전쟁 준비가 미흡하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40년 9월 13일, 베니토 무솔리니로돌포 그라치아니가 이끄는 20만 명의 군대를 영국령 이집트로 진격시켰으나, 보급 문제로 시디 바라니에서 진격을 멈췄다.[785][786] 영국군은 리처드 오코너의 지휘 하에 반격하여 이탈리아군을 궤멸시키고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까지 점령했다.[787] 이탈리아군은 13만 명의 포로와 400대의 전차, 3,000자루의 총을 잃었다.[788]

1941년 2월 12일, 윈스턴 처칠은 북아프리카 공격을 중지하고 영국군을 그리스 전선으로 이동시켰다. 이탈리아는 독일에 지원을 요청했고, 독일은 제15, 제21 기갑사단 등을 조직하여 에르빈 롬멜을 지휘관으로 임명, 북아프리카로 파견했다. 2월 6일, 아돌프 히틀러는 롬멜에게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의 진격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785][786]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리비아 상실이 무솔리니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켜 독일-이탈리아 동맹을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부 사막 전투 지역


1941년 2월 6일, 롬멜은 제5경장갑사단(후에 제21기갑사단(베어마흐트)로 개명됨)과 제15기갑사단(베어마흐트)으로 구성된 신설 아프리카 군단(''Deutsches Afrika Korps''; DAK)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2월 12일에 리비아의 트리폴리로 이동했다. DAK는 영국 연합군에 패배한 이탈리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롬멜의 활약으로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아프리카 주둔 연합군은 아치볼드 웨이벌 장군이 지휘했다.

롬멜은 이탈리아 총사령관 이탈로 가리볼디의 지휘를 받았으나, 국방군 최고사령부의 방어 명령을 무시하고 공세를 시작했다. 3월 24일, 제5경보병사단으로 제한적인 공세를 개시했다. 영국군은 롬멜이 5월까지 방어 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3월 31일 독일군은 멜사 엘 브레가를 점령했다. 롬멜은 부대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4월 3일 진격을 재개했고, 벵가지를 함락시켰다. 가리볼디는 롬멜에게 멜사 엘 브레가에 머물도록 명령했지만, 롬멜은 이를 무시했다.

연료, 식량, 식수 부족과 모래 사막에서의 장비 이동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4월 8일에는 항구 도시 토브룩을 제외한 키레나이카가 함락되었고, 토브룩은 4월 11일에 포위되었다.

1941년 4월, 사막에서 불타는 차량을 지나가는 아프리카 군단 III호 전차


토브루크 공방전은 기술적으로 포위전이 아니었다. 방어군은 항구를 통해 보급품과 증원군을 받을 수 있었다. 롬멜은 항구 점령을 통해 보급선 길이를 줄이고자 했다. 3만 6천 명의 영연방군은 레슬리 모스헤드 중장이 지휘했다. 롬멜은 4월 14일에 공격을 감행했지만 실패했다.

할파야 고개 및 주변 지역 지도


롬멜은 증원을 요청했지만, 바르바로사 작전을 준비하던 OKW는 이를 거절했다.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장군은 상황 점검을 위해 4월 25일에 도착했고, 4월 30일 도시에 대한 두 번째 공격 실패 현장에 있었다. 5월 4일, 파울루스는 직접 공격을 통한 토브루크 점령 시도를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5월 브리비티 작전에서의 역공격 실패 후, 6월 15일 배틀액스 작전이 개시되었지만 실패했다. 이 패배로 처칠은 웨이벌을 해임하고 클로드 오친렉 장군을 임명했다.

8월, 롬멜은 신설된 아프리카 기갑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프리츠 바이어라인을 참모총장으로 임명했다. 아프리카 군단은 루트비히 크뤼벨 중장의 지휘를 받았다. 롬멜의 기갑집단에는 제90경보병사단과 4개의 이탈리아 사단이 포함되었다. 두 개의 이탈리아 기갑사단은 가스토네 갬바라 장군의 지휘를 받았다. 히틀러는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를 남부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공중 및 해상 통제권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르 하케임 근처에서 발포하는 8.8cm 플락 18 대공포. 배경에 롬멜의 차량이 보인다.


배틀액스 작전에서의 성공 이후, 롬멜은 토브루크 점령에 다시 집중했다. 그는 11월 15일에서 20일 사이에 시작될 새로운 공세를 준비했다. 한편, 오친렉은 연합군을 재편성하고 영국 제8군을 구성했다. 이는 앨런 커닝햄의 지휘를 받았다. 오친렉은 토브루크를 구원하기 위한 크루세이더 작전을 1941년 11월 18일에 개시했다. 롬멜은 11월 20일 토브루크 공격 계획을 연기해야 했다.

4일간의 전투에서 제8군은 전차 530대를 잃었고, 롬멜은 100대만 잃었다. 11월 24일, 롬멜은 이집트 국경 근처에서 역공격을 가했다. 커닝햄은 오친렉에게 철수를 요청했지만, 오친렉은 거절하고 커닝햄을 해임, 닐 리치 소장을 제8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독일군의 역공격은 보급 부족과 저항으로 멈췄고, 독일 최고 사령부와 롬멜의 참모 장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롬멜이 이집트로 진격하는 동안, 토브루크 동쪽에 남아 있던 영연방군은 추축군 전선을 위협했다. 지그프리트 베스트팔은 토브루크 포위를 지원하기 위해 제21 기갑사단을 철수시켰다. 11월 27일, 토브루크에 대한 영국군의 공격이 방어군과 합류했고, 롬멜은 이집트로 공격했던 사단을 재편성해야 했다. 12월 7일까지 롬멜은 토브루크 서쪽 가자라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합군은 압력을 가했고, 롬멜은 1941년 12월 엘 아게일라에 도착했다. 영국군은 키레나이카의 거의 모든 지역을 탈환했지만, 롬멜의 후퇴는 보급선을 단축시켰다.

1942년 1월 5일, 아프리카 군단(Afrika Korps)은 55대의 전차와 새로운 보급품을 받았고 롬멜은 반격을 계획, 1월 21일에 개시했다. 기습을 당한 연합군은 110대가 넘는 전차와 중장비를 잃었다. 추축군은 1월 29일 벵가지를, 2월 3일 팀이미를 탈환했으며, 연합군은 가잘라 연안 도시 남쪽 토브루크 지역 바로 앞 방어선으로 후퇴했다. 1941년 12월부터 1942년 6월까지 롬멜은 영연방군의 배치와 의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1942년 4월 케셀링이 몰타의 영국 해군 및 공군 기지 주변에서 공중 우세를 확보하면서, 아프리카의 추축군에 대한 보급품이 증가했다. 롬멜은 5월 말 대규모 공세 작전을 고려했다. 그는 영국군도 공세 작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선제 공격을 원했다. 1942년 5월 26일 오후 초, 롬멜이 먼저 공격을 개시하여 가잘라 전투가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서 롬멜의 기계화 및 기갑 부대 대부분은 영국군의 좌측 측면을 우회하여 다음날 아침 북쪽으로 공격했다.

5월 30일, 롬멜은 공세를 재개했고, 6월 1일, 약 3,000명의 영연방 군인들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6월 6일, 롬멜의 부대는 비르 하케임 전투에서 자유 프랑스군의 요새를 공격했지만, 수비대는 6월 10일 철수할 때까지 공격을 저지했다. 롬멜은 그 후 공격을 북쪽으로 전환했다. 완전히 포위될 위기에 처한 영국군은 6월 14일 이집트 동쪽으로 후퇴했다("가잘라 질주").

토브루크에서 지휘 차량을 타고 전차를 따라가는 롬멜.


토브루크에 대한 공격은 6월 20일 새벽에 시작되었고, 영국군은 다음날 새벽에 항복했다. 롬멜의 부대는 32,000명의 영연방군 병력과 항구, 막대한 양의 보급품을 점령했다. 6월 22일, 히틀러는 이 승리로 롬멜을 원수(Generalfeldmarschall)로 승진시켰다. 가잘라와 토브루크에서의 성공 이후, 롬멜은 제8군이 재편성될 기회를 주지 않으려 했다. 그는 판저 군단이 이집트로 진격하여 알렉산드리아수에즈 운하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브루크에서의 롬멜의 성공은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는데, 히틀러는 더 이상 몰타 공격 작전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오친렉은 6월 25일 제8군 사령관 리치를 해임하고 자신이 임시로 사령관직을 맡았다. 롬멜은 지연이 영국군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오친렉이 후퇴 지점으로 지정한 요새화된 도시 메르사 마트루를 공격하여 6월 28일 포위했다. 그 요새는 6월 29일 독일군에게 함락되었다. 연료와 기타 보급품 비축량 외에도 영국군은 수백 대의 전차와 트럭을 버렸다. 작동 가능한 것들은 판저 군단에 투입되었는데, 이제는 수송의 절반을 영국 트럭에 의존하고 있었다.

롬멜은 영국군이 후퇴로를 차단하기 전에 병력을 철수시키려고 하면서 일련의 지연 작전을 수행했다. 폭우로 인해 이동이 느려지고 사막 공군의 활동이 제한되면서 철수는 어려워졌지만, 롬멜의 부대는 추격하는 제8군의 압박을 받아 이탈리아군의 트럭을 버리고 후퇴했다. 롬멜은 계속해서 서쪽으로 후퇴하며 튀니지의 '가베스 협곡'을 목표로 했다. 케셀링은 롬멜이 튀니지까지 후퇴하기로 한 결정을 비판했는데, 독일군이 포기하는 각 비행장마다 연합군 폭격기와 전투기의 작전 반경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롬멜은 자신의 결정을 방어하며, 만약 방어진지를 구축하려고 했다면 연합군이 자신의 부대를 파괴하고 어차피 비행장을 점령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퇴는 남은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고 보급선을 단축시켰다는 것이다. 이제 롬멜의 남은 부대는 전투력이 감소된 소규모 부대로 싸워야 했지만, 연합군은 압도적인 수적 우세와 공중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었다. 튀니지에 도착한 롬멜은 연합군의 모로코 침공 이후 튀니지에 도착한 10기갑사단을 포함한 증원군을 보고 다소 씁쓸함을 느꼈다.

롬멜이 노획한 미군 M3 반궤도 장갑차를 사용하는 병사들과 이야기하는 모습, 튀니지.


튀니지에 도착한 롬멜은 북쪽의 튀니스로 향하는 그의 보급로를 위협하는 미국 제2군단을 공격했다. 롬멜은 2월에 카세린 고개 전투에서 미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며 전쟁 중 마지막 전투 승리를 거두었고, 미국 육군과의 첫 교전을 치렀다.

롬멜은 즉시 영국군으로 방향을 돌려 마레트 방어선(리비아 국경의 옛 프랑스 방어선)을 점령했다. 1943년 1월 말 롬멜이 카세린에 있을 때, 이탈리아의 조반니 메세 장군이 아프리카 기갑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독일군 1개 군단과 이탈리아군 3개 군단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하여 이탈리아-독일 기갑군으로 개칭되었다. 메세가 롬멜을 대신했지만, 외교적으로 롬멜에게 양보했고, 이론적으로는 동일한 지휘 체계였지만 두 사람은 공존했다. 2월 23일, 롬멜이 지휘하는 아프리카 군집이 창설되었다. 여기에는 메세(1 이탈리아군으로 개칭됨) 휘하의 이탈리아-독일 기갑군과 튀니지 북부에 주둔한 한스-위르겐 폰 아르님 장군 휘하의 독일 제5기갑군이 포함되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의 마지막 공세는 1943년 3월 6일 제8군을 공격한 메데닌 전투였다. 이 공격에는 제10, 제15, 제21 기갑사단이 투입되었다. 울트라 해독으로 공격을 예측한 몽고메리는 공격로에 다수의 대전차포를 배치했다. 52대의 전차를 잃은 롬멜은 공격을 중단했다. 3월 9일 그는 독일로 돌아갔다. 지휘권은 한스-위르겐 폰 아르님 장군에게 넘겨졌다. 롬멜은 다시는 아프리카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곳에서의 전투는 두 달 더 계속되어 1943년 5월 13일 메세가 연합군에 항복할 때까지 이어졌다.

5. 4. 1943년 이탈리아 전선

Erwin Rommelde1943년 7월 23일 영국의 침공 가능성에 대비하여 그리스 E 집단군 사령관으로 이동했다. 7월 25일 그리스에 도착했지만, 같은 날 무솔리니의 실각으로 베를린으로 소환되었다. 이후 독일 최고사령부는 지중해 방어의 완전성을 재검토했고, 롬멜을 새로 편성된 B 집단군 사령관으로 이탈리아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1943년 8월 16일, 롬멜의 본부는 이탈리아 북부의 가르다호로 이동했고, 그는 공식적으로 제44보병사단, 제26기갑사단, 제1SS기갑사단 라이프슈탄다르테 SS 아돌프 히틀러로 구성된 집단군의 사령관직을 맡았다.[795]

이탈리아가 1943년 9월 8일 연합군과 휴전을 선언했을 때, 롬멜의 집단군은 악세 작전에 참여하여 이탈리아군을 무장해제시켰다.

히틀러1943년 9월 30일 이탈리아에서의 향후 작전을 논의하기 위해 롬멜과 케셀링과 만났다. 롬멜은 로마 북쪽에 방어선을 구축할 것을 주장했지만, 케셀링은 더 낙관적이었고 로마 남쪽에 방어선을 유지하는 것을 옹호했다. 히틀러는 케셀링의 권고를 선호하여 케셀링의 부대를 롬멜의 집단군에 종속시키려던 이전 결정을 취소했다. 10월 19일, 히틀러는 케셀링이 이탈리아에서의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 될 것이라고 결정하여 롬멜을 측면으로 밀어냈다.

롬멜은 이탈리아에서 독일군 방어선의 붕괴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잘못 예측했다. 11월 21일, 히틀러는 케셀링에게 이탈리아 전역의 전체적인 지휘권을 맡기고, 오랫동안 예상되어 온 연합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프랑스 노르망디로 롬멜과 B 집단군을 이동시켜 프랑스 해안 방어의 책임을 맡겼다.[796]

5. 5. 1943~1944년 프랑스 전선

1943년 11월, 롬멜은 연합군의 침공 가능성에 대비하여 프랑스 해협의 해안 방위 책임을 맡아 서부전선 사령관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와 함께 서부 전선에서 근무하게 되었다.[797] 롬멜은 대서양 방벽 건설에 비상한 창의력을 발휘했다.[798] 그는 연합군이 교두보를 설치하기 전에 해안에서 격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독일 국방군최고 사령부(OKW)와 서부 전구 총사령부(OB.WEST)의 룬트슈테트 등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롬멜의 스케치. 그림에 적힌 그의 말: "대공수 장애물 패턴. 이제 규칙적으로가 아니라 불규칙적으로 간격을 띄워야 한다".


룬트슈테트는 연합군을 내륙 깊숙이 유인하여 기갑 부대로 전멸시키는 계획을 주장했지만, 롬멜은 제공권이 없는 상황에서 기갑 부대 이동이 제한될 것이므로 해안에서 적을 격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롬멜은 포티튜트 작전을 간파하고 노르망디 해안 방어에 관심을 보인 히틀러를 자신의 전략에 이용하려 했다.

제21전차사단 병사와 네벨베르퍼의 노새 수송대를 시찰하는 롬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자 롬멜의 주장이 일부 옳았음이 밝혀졌지만, 독일군은 제공권과 연료, 탄약 부족으로 연합군에 밀려 후퇴했다. 롬멜은 상륙 작전 당일 아내의 생일로 베를린에 있었고, 전선에 복귀했을 때는 이미 전선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롬멜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확신하고, 히틀러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연합군과 강화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총통에 대한 충성'과 '조국에 대한 애국심' 사이에서 갈등했다.

1944년 7월 17일, 롬멜은 영국군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8월에 퇴원하여 요양 생활을 하며 회복했다.[799]

롬멜은 캉 북쪽 리바벨라에서, 나중에 노르망디의 소드 해변이 된 지역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관찰하고 있다.

5. 6. 히틀러 암살 미수 연루

롬멜이 군부의 히틀러에 대한 저항이나 7월 20일 음모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직접 관련된 지도자들 대부분이 살아남지 못했고 음모자들의 계획과 준비에 대한 기록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확인하기 어렵다.[34][35] 롬멜이 암살 계획을 지지하게 되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 중 하나는 에버바흐 장군이 영국 포로 수용소에 있을 때 아들에게 한 고백(영국 기관이 도청)인데, 그 고백에서 롬멜은 히틀러와 그의 측근들을 죽여야만 독일이 살길이 있다고 명시적으로 말했다.[34][35] 이 대화는 롬멜이 자살을 강요당하기 약 한 달 전에 있었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증거는 (후에 숙청에서 살아남은) 루돌프 하르트만과 카를-하인리히 폰 슈튀릅나겔의 서류다. 이들은 (롬멜의 참모총장인 한스 슈파이델 장군, 카를-리히트 코스만 대령, 에버하르트 핀크 대령, 카이사르 폰 호파커 중령과 함께) 군부 저항의 지도자들 중에 있었다. 2018년 역사가 크리스티안 슈바이처가 루돌프 하르트만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이 서류에는 1944년 5월 롬멜과 슈튀릅나겔 사이의 대화에 대한 하르트만의 목격자 진술과 5월 중순 저항의 내부 핵심 인물과 롬멜이 코스만의 집에서 가진 회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하르트만에 따르면, 5월 말 마레일-마를리에 있는 하르트만의 사무실에서 열린 또 다른 회의에서 롬멜은 "결정적인 결의"와 내부 핵심 인물들의 계획에 대한 명확한 승인을 보였다.[36] 카를 슈트뢰린의 전후 진술에 따르면, 롬멜의 세 친구—슈투트가르트의 '''오베르뷔르거마이스터'''인 슈트뢰린(제1차 세계 대전에서 롬멜과 함께 복무했음),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과 슈튀릅나겔—은 1944년 초에 롬멜을 반히틀러 음모에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슈트뢰린에 따르면, 2월 언젠가 롬멜은 저항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

1944년 5월 15일 마레일-마를리에서 군부 저항의 내부 핵심 인물과 롬멜의 회의. 왼쪽부터 슈파이델 – 뒤쪽, 롬멜 – 중앙, 슈튀릅나겔 – 앞쪽. 왼쪽에 서 있는 장교는 루돌프 하르트만이다.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다.


1944년 4월 15일, 롬멜의 새로운 참모총장인 한스 슈파이델이 노르망디에 도착하여 롬멜을 슈튀릅나겔에게 다시 소개했다. 슈파이델은 이전에 저항의 민간 지도자인 카를 괴르델러와 관련이 있었지만,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이끄는 음모자들과는 관련이 없었고, 롬멜의 본부에 임명된 후에야 슈타우펜베르크의 관심을 끌었다. 음모자들은 현역 원수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음모가 성공했더라면 국방군 총사령관이 되었을 에르빈 폰 비츠레벤은 원수였지만 1942년 이후로는 비활동적이었다. 음모자들은 슈파이델에게 롬멜을 그들의 그룹에 끌어들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슈파이델은 전 외무장관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와 슈트뢰린과 5월 27일 독일에서 만났는데, 표면적으로는 롬멜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지만, 롬멜은 참석하지 않았다. 노이라트와 슈트뢰린은 서쪽에서 즉각적인 항복 협상을 제안했고, 슈파이델에 따르면 롬멜은 추가적인 논의와 준비에 동의했다. 같은 시기에 베를린의 음모자들은 롬멜이 음모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5월 16일, 그들은 서방 연합국과 협상하기를 바라며 앨런 덜레스에게 롬멜을 지지할 수 없다고 알렸다.

적어도 처음에는 롬멜은 히틀러 암살에 반대했다. 일부 저자들에 따르면,[37][181] 그는 점차 태도를 바꿨다. 전후 그의 미망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롬멜이 암살 시도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내전을 일으킬 것이며, 히틀러는 지속적인 대의를 위한 순교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주장했다. 대신, 롬멜은 히틀러가 체포되어 범죄로 기소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6월 17일 히틀러가 프랑스 마르지발을 방문했을 때 이 계획을 실행하려고 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경호가 매우 삼엄했기 때문에 체포 계획은 매우 불가능했을 것이다. 롬멜은 1939년 히틀러의 군대 보호 부대를 지휘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평화 협상을 지지했고 연합국과 협상할 것을 히틀러에게 거듭 촉구했는데, 이는 아무도 히틀러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일부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순진한" 것으로 여긴다.[39]

로이트에 따르면, 루치 롬멜이 남편이 어떤 음모와도 관련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전쟁 후에도 독일 국민들은 대량 학살의 실상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모자들은 여전히 반역자이자 추방자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저항 세력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롬멜의 명성에 의존했다. 롬멜과 함께 일했던 일부 장교들도 롬멜과 저항 세력 사이의 관계를 인식했다. 베스트팔은 롬멜이 더 이상 무의미한 희생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버틀러는 루게의 회상을 이용하여 히틀러 자신이 "아무도 나와 평화를 맺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롬멜이 히틀러에게 만약 그가 평화의 장애물이라면 사임하거나 자살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히틀러는 광신적인 방어를 고집했다고 전한다.

로이트는 요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롬멜이 상황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히틀러에게 정치적 해결책을 요구했으며, 히틀러는 롬멜에게 정치는 자신에게 맡기라고 거절했다고 전한다. 브라이튼은 롬멜이 군사적 딜레마뿐 아니라 개인적인 갈등에도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에게 직접 또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변화하는 신념을 계속 알리고 있었기 때문에 헌신적인 것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리브는 롬멜이 상황을 정직하게 묘사하고 정치적 해결책을 요구하는 태도는 거의 전례가 없었고 다른 많은 장군들의 태도와는 대조적이라고 지적한다.[181] 레미는 롬멜이 독일의 운명에 대한 염려, 잔악 행위에 대한 분노,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자신과 가족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말한다.

7월 15일, 롬멜은 히틀러에게 서방 연합국과의 적대 행위를 종식시킬 "마지막 기회"를 주는 편지를 써서 히틀러에게 "지체 없이 적절한 결론을 내리라"고 촉구했다. 롬멜이 몰랐던 것은 클루게의 예방 조치 때문에 편지가 히틀러에게 도달하는 데 2주가 걸렸다는 것이다.[40] 하우서, 비트리히, 디트리히(극단적인 나치이자 히틀러의 오랜 지지자)와 같은 일부 SS 장교와 롬멜의 전 적수인 게이르 폰 슈베펜부르크를 포함하여 노르망디의 많은 독일 장군들이 히틀러의 명령에 반해서라도 그를 지지했으며, 클루게는 매우 주저하면서 그를 지지했다고 전한다.[41] 룬드슈테트는 롬멜에게 계획을 실행하도록 격려했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그것은 아직 젊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42] 에리히 폰 만슈타인도 롬멜에게 접근했지만 단호히 거절했지만, 그를 히틀러에게 고발하지도 않았다.[43] 피터 호프만은 그가 이전에 음모를 지지하기를 거부했던 율리우스 도르프뮐러와 카를 카우프만과 같은 관리들을 자신의 궤도로 끌어들였다고 보고한다.

1944년 7월 17일, 롬멜은 연합군의 공습으로 부상을 입었는데, 많은 저자들은 이것을 폭탄 음모의 결과를 극적으로 바꾼 운명적인 사건으로 묘사한다. 작가 에른스트 융거는 "롬멜을 쓰러뜨린 타격은... 전쟁과 내전이라는 이중의 무게를 맡을 어깨를 계획에서 빼앗았다. 그는 자신이 맞서려는 자들이 가진 단순한 공포에 맞설 만큼 충분한 순진함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7월 20일 폭탄 테러가 실패한 후, 많은 음모자들이 체포되었고, 수천 명으로 수사망이 확대되었다. 슈튀릅나겔이 자살 시도 후 섬망 상태에서 "롬멜"이라고 반복해서 중얼거렸을 때 롬멜이 처음으로 연루되었다.[44] 고문을 받던 호파커는 롬멜을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지목했다. 또한, 괴르델러는 슈트뢰린에 따르면 잠재적인 라익 대통령으로 롬멜의 이름을 목록에 적어놓았다.

9월 27일, 마르틴 보르만은 히틀러에게 "고인이 된 슈튀릅나겔 장군, 호파커 대령, 처형된 클루게의 조카, 라트겐스 중령, 그리고 여러 명의 ... 살아있는 피고인들이 롬멜 원수가 암살 계획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고 신정부에 기꺼이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고 증언했다"고 주장하는 각서를 제출했다.[45] 게슈타포 요원들은 울름에 있는 롬멜의 집으로 파견되어 그를 감시했다. 역사가 피터 리브는 그 각서와 에버바흐의 대화, 그리고 살아남은 저항 세력원들의 증언(하르트만 포함)을 롬멜이 암살 계획을 지지했음을 나타내는 세 가지 주요 근거로 간주한다. 그는 또한 슈파이델이 전후 자신의 경력을 증진하려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초기 저항 인물로서 그의 용기를 고려할 때 그의 증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레미는 암살에 대한 롬멜의 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롬멜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쓴다. 그는 엘 알라메인 전투 후 몇 달 만에 이 계획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고독한 결정과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실행했으며, 결국 서쪽의 군 지휘관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같은 해 7월 20일,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주도한 7월 20일 음모가 실패로 끝났지만, 롬멜과 친분이 있던 슈파이델이 계획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았고, 체포 직전 슈튀르프너겔이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면서 횡설수설 중 롬멜의 이름을 언급했으며, 슈튀르프너겔의 부관 체저 폰 호파커 중령이 게슈타포의 고문으로 롬멜이 "나를 믿어도 좋다"고 말했다고 증언하면서 롬멜도 계획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게 되었다.

롬멜이 암살 계획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었다는 의혹은 짙었지만, 확실한 증거는 얻지 못했다. 이러한 정보가 히틀러에게 전달되었지만, 히틀러는 롬멜의 연루를 확신하고, 가장 아끼던 장군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마지막 자비로서, 재판에 회부되어 굴욕적인 심판을 받고 처형될 것인지, 영웅의 명예를 지킨 채 자결할 것인지를 롬멜 자신에게 선택하게 하였다.

롬멜이 실제로 슈타우펜베르크 일당의 계획에 참여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1970년대까지 강력했던 롬멜 명장론[212]의 영향으로, 롬멜의 마음속에는 군인으로서의 충성심이 있었고, 상관인 히틀러 암살에는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암살 계획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유력했다.[733] 또한 롬멜을 "허영심에 사로잡혀 무모한 작전"을 수행한 장군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한 역사가 데이비드 어빙도 본격적인 롬멜 전기인 「여우의 발자취」에서 롬멜은 끝까지 히틀러에게 충실한 군인이었으며, 히틀러 암살 계획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후 롬멜의 계획 참여를 보여주는 자료도 발견되었고, 2013년에는 독일의 역사가 페터 리프가 "엘빈 롬멜: 저항의 투사인가, 아니면 나치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롬멜은 7월 20일 쿠데타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지지하고 암살 계획자들의 진영에 합류했다"고 지적했다.

8월 8일, 롬멜은 파리에서 헤를린겐의 자택으로 돌아왔다. 아직 완치에는 요원한 상태로 걷기만 해도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이후 관계자에 대한 재판에 대해 롬멜은 신문 보도 이상의 사실을 몰랐지만,[737] 9월 7일에는 롬멜의 부관 슈파이델이 결국 체포되었다. 롬멜 자신은 아직 소환 명령 등을 받지 않았지만, 히틀러의 철저한 수사가 주변에 미치자 그동안 롬멜과 친분이 있던 친구들도 갑자기 눈에 띄는 발언을 하지 않았고, 롬멜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아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쥐들이 가라앉는 배를 떠나기 시작했구나"라고 말했다. 그래도 체포된 슈파이델의 사면을 호소하기 위해 10월 1일 히틀러에게 마지막 친서를 썼다.[738]

그러나 이 친서도 소용없었고, 마침내 10월 7일 카이텔로부터 롬멜에게 베를린 출두 명령 전문이 도착했다. 출두 이유는 "중요 회의 참석"으로 되어 있었지만, 롬멜은 아들 만프레트에게 "나는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놈들이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살아서 베를린에 도착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출두 명령에 대해서는 롬멜을 치료하던 뇌 전문의 교수가 롬멜은 아직 여행에 견딜 수 없는 상태라는 진단서를 써 주었기 때문에 출두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로써 히틀러가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739]

10월 14일, 히틀러의 사자로서 빌헬름 폰 브룩돌프 중장과 에른스트 마이젤 소장이 헤를린겐을 방문한다는 연락이 왔다. 연락을 받은 시점에서 롬멜은 "그들이 나를 어떻게 하려는지 오늘 알겠지. 인민재판에 회부되거나, 동부 전선의 군사령관이 되거나"라고 아들 만프레트에게 말했고, 롬멜의 예상대로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군사령관직을 수락할 의향도 있다고 말했다.[740] 그러나 롬멜의 예상과는 달리, 사자 장교 2명은 도착하자마자 롬멜과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며 가족을 퇴장시킨 후, 롬멜에게 "자결하면 반역을 묻지 않고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가족에게 연금을 지급한다" 또는 "인민재판으로 심판한다"는 두 가지 선택지를 히틀러가 제시했다는 것을 전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롬멜은 놀라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고, 숙고 끝에 "내가 권총으로 죽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대답하자, 브룩돌프가 "3초 만에 효과가 나타납니다"라며 독약을 지참하고 있음을 조용히 전했다.[741]

롬멜은 15분의 유예를 받고 가족과 부관 헤르만 알딩거 대위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아들 만프레트에게는 "적의 손에 죽는 것은 비참하다. 그러나 집은 포위되어 있고, 히틀러는 나를 대역죄로 고발하고 있다" "나는 너에게 철저히 침묵을 지킬 것을 약속하고 있으니, 만약 이 일이 한마디라도 새어나가면 그들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밀을 지키는 대신 가족의 안전을 보장했다는 것을 전했고, 알딩거는 사자를 사살하고 전선으로 탈출할 것을 권했지만, "나는 군인이며 최고 사령관의 명령에 따른다"라며 저항하지 않겠다고 말했다.[742] 롬멜은 가족의 안전을 확약받은 후 브룩돌프가 타고 온 군용차에 동승하여 차 안에서 브룩돌프가 건넨 청산가리 알약을 먹고 자결했다.[743] 롬멜의 자택 주변에는 저항에 대비하여 친위대 부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압도적인 전공으로 알려진 롬멜의 죽음은 "전상으로 인한 것"으로 발표되었고, 조국의 영웅으로서 울름에서 성대한 국장이 거행되었다. 국민의힘 또는 보수 진영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히틀러가 롬멜을 처형하지 않고 자결로 몰아넣은 것은 국민적 인기를 자랑하는 롬멜을 처형하면 국민과 군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733] 히틀러는 직접 조문하지 않고 사정을 몰랐던 룬트슈테트를 대리로 조문하게 했다.

롬멜의 사후, 아내 루치와 아들 만프레트는 롬멜이 남긴 전쟁 기록과 각종 기록, 1,000통이 넘는 편지를 압수당하지 않도록 숨기기로 했고, 독일 남서부의 여러 도시와 마을에 나누어 비밀리에 보관했다. 그 비밀 보관 방법은 철저했으며, 신뢰할 수 있는 지인에게 맡기는 것 외에도 병원에 숨기거나, 지하실이나 공습으로 파괴되어 버려진 폐가의 벽에 발라 숨기기도 해서 히틀러로부터 압수되는 것을 면했다. 그러나 롬멜의 시체에서는 원수장과 군모가 압수되어 총통 대본영으로 운반되었고, 히틀러의 부관 율리우스 샤우브 친위대 대장이 자신의 책상에 방치했지만, 루치와 롬멜의 부관 헤르만 알딩거 대위의 강력한 항의로 반환되었다.[744] 롬멜의 기록은 종전까지 대부분 무사했지만, 미군이 진주하자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압수되어 가족의 손으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도난당했다. 미군에 압수된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롬멜의 전쟁 기록을 집필하기 위해 영국의 군사 평론가이자 군사사 연구가인 베이질 리델 하트와 데즈먼드 영 준장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부탁하여 미국 정부 역사부로부터 반환받았다.[745]

6. 죽음

1943년 3월 9일, 튀니지 전투에서 마지막 전투인 카세린 협곡 전투메드닌 전투에 참전했던 롬멜은 독일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롬멜이 지휘했던 아프리카 군단은 한스위르겐 폰 아르님 상급대장의 증원군과 합류했지만, 전력의 한계로 1943년 5월 연합군에 항복했다.[773][785]

1943년때 롬멜.


독일로 돌아온 롬멜은 히틀러의 총애를 잃었고, 북아프리카 전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하던 중, 연합군의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상륙작전 성공으로 히틀러는 롬멜을 복직시켜 이탈리아 전선으로 보냈다.

1943년 9월 23일, 롬멜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비난하며 히틀러의 미움을 샀다.[773][785]

롬멜 장례 행렬


1944년 10월 16일 나치 신문 ''Bozner Tagblatt''에 실린 에르빈 롬멜 사망 공식 발표


청산가리 알약으로 자살한 에르빈 롬멜 기념비, 헤를링겐 (2019)


1944년 7월 20일,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주도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롬멜은 이 계획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히틀러는 국민적 영웅이었던 롬멜을 제거하기로 결심했지만, 동시에 그를 반역자로 낙인찍고 처형하는 것이 국내 사기를 심각하게 저하시킬 것을 알고 있었다.[46] 그래서 롬멜에게 자결할 기회를 주었다.

1944년 10월 14일, 히틀러 본부의 빌헬름 부르크도르프와 에른스트 마이젤 두 장군이 롬멜의 집을 방문하여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 베를린에서 히틀러 앞에서 직접 변호.
  • 인민재판소에 회부.
  • 자살.


부르크도르프는 롬멜에게 자살을 선택할 경우, 그의 가족은 안전할 것이며, 영웅적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하고 군사 예우를 갖춰 매장하며 그의 가족에게는 연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자살을 위한 청산가리 캡슐을 가져왔다.[47][48][49]

롬멜은 자살을 선택하고 가족에게 알렸다. 그는 아프리카 군단 재킷을 입고 원수 지팡이를 든 채 부르크도르프의 차에 탔다. 차 안에서 롬멜은 청산가리를 복용하고 쓰러졌다. 그는 바그너 슐레 야전병원으로 이송되기 전에 사망했다.

헤를링겐에 있는 에르빈 롬멜의 묘 (2019)


울름 시청에서 거행된 롬멜의 장례식. 룬트슈테트 원수가 조사를 낭독했다(1944년 10월 18일)


롬멜의 사망은 심장마비 또는 뇌색전증으로 발표되었다.[50] 히틀러는 공식적인 추모일을 명령했고, 롬멜은 국장을 치렀다.[51] 히틀러는 롬멜이 자신의 명령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룬드슈테트 원수를 장례식에 보냈다.

롬멜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1945년 4월, 그의 아들 만프레드 롬멜의 편지를 통해 연합군에 알려졌다. 롬멜의 묘는 헤를링겐에 있으며, 전후 수십 년 동안 그의 사망 기념일에 참전 용사들이 모였다.[53]

7. 사후



롬멜의 묘


롬멜의 음독자살 직후, 그의 시신은 울름의 군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는 롬멜의 사인을 '서부 전선에서 입은 부상 악화에 따른 심장마비'라고 공식 발표했다.[803]

10월 18일, 독일 울름시청에서 롬멜의 공식 추도식이 거행되었으며, 룬트슈테트가 추도식 사회를 맡았다. 히틀러와 그의 측근들은 장례식에 불참했지만, 많은 독일 국민들은 롬멜의 죽음을 애도했다.[804]

롬멜의 묘는 현재 뷔템베르크 주 헤를링엔이라는 작은 마을에 안치되어 있다.

일부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은 롬멜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정치적 이유로 형성된 "롬멜 신화"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롬멜이 비정치적인 뛰어난 지휘관이자 나치 독일의 희생자이며, 7월 20일 음모에 참여한 인물로 묘사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롬멜 신화" 또는 "롬멜 전설"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학자들도 많다.[193] 롬멜 신화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젊은 장교였던 롬멜의 성공에 대한 열망과, 독일 군사 문학과 다른 스타일로 쓰여 베스트셀러가 된 1937년 저서 ''보병 공격''에서 시작되었다.

7월 20일 음모에 연루되었던 한스 슈파이델과 함께한 롬멜


이후 롬멜 신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나치 선전의 일환으로 국민들에게 낙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방군을 칭찬하기 위해 롬멜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형성되었다. 롬멜이 북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때, 서구 언론, 특히 영국 언론은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군을 계속해서 패퇴시키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롬멜 신화를 확대했다. 영국 군부와 정치인들은 1942년 1월 롬멜이 극동으로 재배치되어 약화된 영국군을 상대로 공세를 재개하자 그의 영웅적인 이미지에 기여했다. 토브룩 함락 후 의회 논쟁에서 처칠은 롬멜을 "매우 대담하고 영리한 적"이자 "위대한 야전 사령관"이라고 묘사했다.

전쟁이 끝난 후 ''슈피겔''지에 따르면, 서독은 이전에 범죄자로 밝혀진 인물들을 대체할 아버지상을 갈망했다. 롬멜은 품위 있는 군인, 교활하지만 공정한 사람을 상징했고, 연좌죄로 유죄라 하더라도 그렇게 유죄가 아니어서 신뢰할 수 없게 되지 않았으며, 게다가 전 동료들은 그가 저항 운동과 가까웠다고 보고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불명예를 안게 된 반면, 그의 별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고, 그는 역사상 전례 없는 시대의 문턱을 뛰어넘었다.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장군에서 젊은 공화국의 영웅으로 된 것이다. 코르넬리아 헤히트는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롬멜은 상반되는 체제와 개념의 상징이 되었는데, 이는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든 역설적이라고 지적한다.

동시에 서방 연합군, 특히 영국은 롬멜을 "좋은 독일인"으로 묘사했다. 그의 깨끗한 전쟁 수행에 대한 명성은 서독 재군비와 전적의 적국인 영국과 미국 한편과 새로운 서독 연방 공화국 간의 화해에 활용되었다. 전쟁 후 히틀러 암살 음모에 롬멜이 연루되었다는 주장이 알려지자 그의 위상은 전적의 적들의 눈에 더욱 높아졌다. 롬멜은 서방 자료에서 히틀러에 맞서 싸우려 했던 애국적인 독일인으로 자주 인용되었다. 처칠은 1950년 그에 대해 "[롬멜은] (...) 충실한 독일 군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와 그의 모든 행위를 증오하게 되었고, 광인이자 폭군을 대체하여 독일을 구출하기 위한 1944년 음모에 참여했기 때문에 우리의 존경을 받을 만합니다."라고 썼다.

하이덴하임(Heidenheim an der Brenz)의 에르빈 롬멜 기념비, 독일


독일 육군의 최대 규모 기지인 아우구스트도르프 롬멜 원수 막사(Field Marshal Rommel Barracks, Augustdorf)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61년 헌정식에는 그의 미망인 루치와 아들 만프레드 롬멜이 명예 손님으로 참석했다.[194] 도른슈타트 롬멜 막사(Rommel Barracks, Dornstadt) 또한 1965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194] 그의 이름을 딴 세 번째 기지인 오스테로데 롬멜 원수 막사(Field Marshal Rommel Barracks, Osterode)는 2004년 폐쇄되었다. 1969년 그의 미망인이 명명식을 거행한 독일 구축함도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으며, 이 함선은 1998년 퇴역했다.[195]

1961년 하이덴하임에 롬멜 기념비가 세워졌다. 2020년, 하이덴하임의 롬멜 기념비 옆에 지뢰 피해자 조각상이 설치되었다. 하이덴하임 시장 베른하르트 일그는 "하이덴하임의 위대한 아들"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196] 하이덴하임은 결국 전쟁, 군국주의 및 극단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위해 기념비를 헌정하고, 1961년 기념비가 세워졌을 때 추가된 진술들이 현재 롬멜에 대한 현대적인 지식과는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197] Deutsche Welle는 영국, 이탈리아, 독일군이 남긴 1700만 개의 지뢰가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인명을 앗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198]

아알렌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 변경에 대한 논의 후, 롬멜과 세 명의 정권 반대자들(유겐 볼츠, 프리드리히 슈바르츠, 카를 미켈러)의 삶에 대한 정보가 담긴 스텔레가 함께 서 있는 새로운 기념 장소가 조성되었다 (롬멜의 스텔레는 짙은 파란색과 녹슨 붉은색인 반면, 다른 스텔레들은 밝은 색깔이다). 아알렌 역사협회는 뒤셀도르프 출신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독립 위원회와 함께 거리 이름을 유지하는 것을 환영하며, 롬멜이 전쟁범죄자도 저항운동가도 아니었지만 동시에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고 언급했다. 그는 기꺼이 정권의 선봉장 역할을 했고, 나중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 아알렌의 어린이들을 위한 "에르빈 롬멜과 아알렌"이라는 교육 프로그램도 설립되었다.[199][200]

2021년, 프리드리히 알렉산더 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 학생회는 에를랑겐 남쪽 캠퍼스의 이름을 롬멜 캠퍼스로 변경하기로 결정했으며, 에를랑겐 시가 그 이름을 지지하고 대학교도 마찬가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01] 교육과학노동조합의 대학 지부는 롬멜의 나치 정권 군사적, 선전적 지지 이력을 고려할 때 이 결정이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202]

특히 롬멜의 고향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를 포함하여 독일 전역에 그의 이름을 딴 수많은 거리가 있다. 그의 마지막 집 근처에 있는 거리도 포함된다. 블라우스타인 롬멜 박물관(Rommel Museum, Blaustein)은 1989년 헤를링겐의 빌라 린덴호프에 문을 열었다.[203] 이 박물관은 현재 롬멜과 헤를링겐의 다른 저명한 주민들(시인 게르트루트 칸토로비츠(그녀의 작품은 롬멜의 이름을 딴 도로에 있는 건물 안에 있는 롬멜 자료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교육자 안나 에싱거와 휴고 로젠탈 등)의 삶을 소개하는 박물관 렙스리니엔(삶의 궤적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204] 또한 머사 마트루 롬멜 박물관(Rommel Museum, Mersa Matruh)이 이집트의 머사 마트루에 있는데, 1977년에 문을 열었고, 롬멜의 전 본부 중 한 곳에 위치해 있다. 롬멜 해변을 포함한 머사 마트루의 다른 여러 지역과 시설들도 롬멜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205] 이렇게 명명된 이유는 그가 베두인족의 전통과 그들의 가정의 신성함을 존중했고(그는 항상 자신의 부대를 그들의 집에서 최소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유지했으며) 연합군에 대한 우물에 독을 넣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까 염려했기 때문이다.[206]

이탈리아에서는 프로테치오네 치빌레(Protezione Civile)와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자치 지역의 관광청이 후원하는 연례 마라톤 투어 "롬멜 트레일"이 롬멜과 카포레토 전투를 기념하고 있다. 2017년 정치인 주세페 치바티는 당시 중도좌파 민주당의 명명과 후원을 비판했다.[207][208]

8. 평가와 비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장성들 중 롬멜은 파란만장한 경력과 매력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그러나 그가 '나치 추종자였는가?'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롬멜은 나치스와 무장 친위대를 극도로 싫어했지만, 아돌프 히틀러와는 친분이 있었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다.[805] 나치 신봉자나 당원은 아니었지만, 히틀러를 유능한 지도자로 여겼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의 전공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사령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무리한 진격을 거듭하여 보급선 문제를 악화시켰고, 결국 아프리카 전선 붕괴에 일조했다. 우고 카발레로 등 이탈리아 장성들과의 불화로 전선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보급 운용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롬멜의 전공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평가한다. 서방 연합군이 붉은 군대보다 질적으로 우수하더라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전투가 드물었다. 반면 동부전선에서는 수십만, 수백만의 전투 손실이 빈번했기 때문에, 롬멜의 전공은 만슈타인이나 구데리안 등 동부전선 장군들보다 높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에서 롬멜은 기동전의 성공적인 전술가였고, 이는 이후 그의 지휘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적에게 재편성할 시간을 주지 않고 주도권을 잡는 것이 승리의 비결임을 알았다. 일부 저술가들은 롬멜의 적들이 종종 조직력이 부족하거나 2류 부대였으며, 그의 전술은 제대로 지휘, 훈련, 보급된 적에게는 효과가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반면, 롬멜이 경력 전반에 걸쳐 수적으로 열세이고 화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싸웠으며, 독일 내부의 반대자들과도 맞서야 했다는 반론도 있다.

롬멜은 많은 저술가들에게 훌륭한 지휘관으로 칭송받는다. 바질 리델 하트는 그를 부하들에게 숭배받고 적들에게 존경받는 강력한 지도자이자 "역사상 위대한 지휘관"으로 평가했다.[54] 그러나 히틀러는 "롬멜 원수는 성공할 때는 추진력이 넘치는 위대한 지도자이지만, 사소한 문제에 직면하면 절대적인 비관주의자가 된다"고 말했다.



롬멜은 기습과 불확실성 조성을 통해 공격전을 펼쳤다. 모래 폭풍과 야음을 이용하여 부대 이동을 은폐했고, 공격적이었으며 종종 전선에서 전투를 지휘하거나 정찰기를 조종하여 상황을 파악했다.

롬멜과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최고 사령부와의 관계는 대체로 좋지 않았다. 명목상 이탈리아군 지휘를 받았지만, 롬멜은 상당한 자율성을 누렸다. 그는 자신의 부대뿐 아니라 이탈리아군도 지휘했기에 이탈리아 지휘관들의 반감을 샀다.

롬멜과 독일 및 이탈리아 장교들, 1942년


롬멜은 지휘력, 공격성, 전술적 전망, 기동전 능력은 부족했지만,[64] 이탈리아 지휘관들은 물류, 전략, 포병 교리에 능숙했다. 이탈리아 군대는 장비가 부족했지만 훈련은 잘 받았기에, 이탈리아 지휘관들은 보급 문제를 놓고 롬멜과 자주 충돌했다.[65]

이탈리아 군 지도자들 사이에서 롬멜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대체로 롬멜은 영웅이라기보다는 비판의 대상이자 패배의 희생양이었고, 일부 장군들은 그를 영웅적인 지도자로 대체하거나 롬멜 신화를 이용하려 했다. 그럼에도 롬멜은 미움받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버림받았다"는 신화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많은 이들이 롬멜의 혼란스러운 지휘력과 감정적인 성격 때문에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이탈리아인들은 다른 독일 고위 지휘관들보다 그를 더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일반 병사들과 부사관들은 롬멜을 매우 신뢰하고 존경했다.[67] 롬멜은 이탈리아 지휘관들을 멸시했지만,[68] 이탈리아 병사들에게는 관대했으며, 많은 상관과 부하들이 인종차별적인 견해를 가졌음에도 롬멜은 이탈리아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다".[69]

1942년 토브루크에서 로멜이 연합군 포로들을 지나가는 모습


많은 저술가들은 롬멜을 기사도적이고 인도적이며 전문적인 장교로 묘사하며, 부대와 적 모두에게 존경받았다고 평가한다.[71][72][73][74][75][76][77] 게르하르트 슈라이버는 케셀링과 함께 발표한 롬멜의 명령을 인용한다. "전 동맹국의 군복을 입은 바돌리오 추종 갱단("Banden" 원문, 폭도와 같은 무리를 가리킴)에 대한 감상은 잘못된 것이다. 독일군과 싸우는 자는 어떤 선대우를 받을 권리도 잃었으며, 친구를 배신하는 폭도에게만 허용되는 엄격함을 경험할 것이다. 모든 독일군은 이러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1944년 2월, 프랑스에서 자유 인도 레기온(Free India Legion) 부대를 사열하는 에르빈 롬멜 원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식민군은 나치 선전에서 프랑스 타락의 상징으로 묘사되었다. 롬멜은 흑인 프랑스 병사들을 경멸했고,[82] 인도 출신 영국 식민군에 대해서도 인종차별적인 견해를 가졌다.[83] 흑인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간주했다.[84]

브루스 왓슨(Bruce Watson)은 롬멜이 초기에 인종차별주의를 가졌을지라도, 사막에서 싸우면서 편견이 사라졌다고 언급한다. 인도군 제4사단 소속 병사들을 높이 평가했다.[129]

롬멜은 유대인 정책과 기타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고 게슈타포의 반대자였다. 유대인 포로를 처형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했다.

롬멜과 루게 제독이 프랑스 라 로셸에 있는 잠수함 기지(U-boat base)를 방문한 모습(1944년 2월)


롬멜은 생전에 적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그의 전술적 기량과 연합군 포로에 대한 관대한 처우는 클로드 오친렉, 아치볼드 웨이벌, 조지 S. 패튼, 버나드 몽고메리 등 적들의 존경을 얻었다.

롬멜의 군사적 평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거의 모든 군사 전문가들이 롬멜의 뛰어난 전술적 능력과 개인적인 용기를 인정하지만, 일부는 롬멜의 작전 수준 지휘관으로서의 성과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1944년 프랑스에서 친독 자유 인도 레기온(Free India Legion) 병사들을 시찰하는 모습


역사가 제프리 P. 메가리(Geoffrey P. Megargee)는 롬멜이 독일과 이탈리아 지휘 구조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했다고 지적한다. 롬멜은 혼란스러운 지휘 구조를 이용하여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명령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요청에 공감할 권한에 호소했다.

롬멜(왼쪽)과 히틀러(오른쪽)


롬멜을 총애하여 원수까지 승진시킨 히틀러였지만,[746] 북프랑스에서 패전을 거듭하는 롬멜을 보고 "롬멜 원수는 승리할 때는 위대한 지도자이지만,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생기면 비관주의자가 된다"라고 평가했다.

롬멜의 상관들은 "훌륭한 사단장이 되기 위한 자질은 모두 갖추고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제1SS기갑군단 사령관 요제프 디트리히는 롬멜에 대해 "전황이 유리할 때 그는 훌륭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의기소침했다"라고 평했고, 토브룩 공략 실패로 제5경사단 사단장에서 해임된 소장은 "중대장으로서 용감한 것과 야전군 사령관인 것은 전혀 다르다"라고 혹평했다.

전쟁 중의 행위와 패전국이었던 점 때문에 나치 지도자들과 많은 독일군 장교들이 비난받는 가운데, 롬멜은 독일은 물론이고 적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지략가이자 인격자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았다. 처칠 수상은 1942년 1월 하원 연설에서 롬멜을 “위대한 장군”이라고 칭찬했는데, 여기에는 롬멜이 히틀러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집트에서도 롬멜은 인기가 높다. 시와 오아시스 마을에서는 롬멜이 방문했을 때 정중한 대접에 대한 사례로 홍차를 건네는 등 했던 일이 있으며, 전후부터 롬멜의 사진이 장식되어 있다.

9. 연보

연도내용
1891년 11월 15일독일 뷔르템베르크 주 울름 북쪽 35 km 떨어진 하이덴하임안데어브렌츠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
1910년 7월 19일뷔르템베르크 제124 보병연대에 사관후보생으로 입대
1911년 3월단치히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입교
1911년 11월사관학교 졸업
1912년 1월소위 임관
1912년 2월뷔르템베르크 제124보병연대 소대장(초년병 교육담당)
1914년 3월울름 제49 야전포병연대 파견근무
1914년 8월 22일블레 전투 참전 (제1차세계대전 처음으로 겪은 전투)
1915년 9월 20일중위 진급
1916년 10월산악대대로 파견되어 프랑스전선에서 루마니아 전선으로 이동
1917년 10월 초원대 복귀, 이탈리아 전선으로 파견
1917년 10월 26일마타주르 전투 참전
1917년 12월 18일우편으로 통해 푸어 르 메리테 훈장 수령받음
1918년 1월제64 군단 사령부 전속 부관, 대위 진급
1918년 11월 11일제1차 세계대전 종전
1918년 12월종전 후 제124보병연대 복귀, 중대장
1921년 1월슈투트가르텐 제 13보병연대 중대장 (9년간 복무)
1928년장남 만프레트 롬멜 출생
1929년 10월소령 진급, 드레스덴 보병학교 전술학 교관(4년 근무)
1933년 10월제17연대 3대대장(2년 복무)
1935년중령 진급
1935년 10월 15일포츠담에 있는 사관학교 교관 근무
1937년대령 진급, 동시에 보병전술록 저술
1938년오스트리아 빈 근처 노이슈타트 사관학교 교장 근무[806]
1939년 6월 1일육군 소장으로 진급
1939년 8월 23일~1940년 2월 14일히틀러 총통 본영 경호 대대장 근무
1940년 2월 15일~1941년 2월 14일제7기갑사단장
1941년 2월 15일~1941년 8월 14일아프리카 군단장, 동시에 중장으로 진급
1941년 8월 15일~1942년 1월 21일아프리카 기갑집단 사령관, 동시에 대장으로 진급
1942년 1월 22일~1942년 10월 24일아프리카 기갑군 사령관, 상급대장으로 진급
1942년 5월 22일토부룩 전투에서 승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육군 원수로 진급
1942년 10월 25일~1943년 2월 22일독일,이탈리아 기갑군 사령관
1943년 2월 23일~1943년 5월 13일아프리카 집단군 사령관 (1943년 3월 9일에 독일 본국으로 송환)
1943년 5월 13일독일 아프리카군단 항복 (사령관 대리 아르님 대장 조인)
1943년 5월 14일~1943년 7월 14일롬멜 임시사령부 (뮌헨소재)
1943년 7월 15일~1944년 9월 3일프랑스 주둔B집단군 사령관
1944년 7월 17일영국군 전투기 저공비행 습격당해 중상입음
1944년 9월 4일~1944년 10월 14일육군최고사령부 대기
1944년 10월 15일음독자살[807]
1944년 10월 18일독일 울름 시청에서 국장 장례식 치룸.



롬멜의 주요 훈장
훈장수여 날짜
뷔르템베르크 군 공훈 훈장
프리드리히 훈장 1등 기사 작위 (뷔르템베르크)
오스트리아-헝가리 군 공훈 십자훈장 3등, 전쟁 장식과 검 (Austria-Hungary)
바이에른 군 공훈 훈장 4등, 검
철십자훈장 2등1914년 9월 24일
철십자훈장 1등1915년 1월 29일
푸르 르 메리트1917년 12월 18일
전상 훈장 은색1918년
철십자훈장 클래스프 2등1940년 5월 13일
철십자훈장 클래스프 1등1940년 5월 15일
전차 휘장 은색
철십자훈장 기사십자장1940년 5월 27일 (제7전차사단 사단장으로서)
참엽 (10번째 수훈자)1941년 3월 20일 (제7전차사단 사단장으로서)
검 (여섯 번째 수훈자)1942년 1월 20일 (아프리카 전차군 사령관으로서)
다이아몬드 (여섯 번째 수훈자)1943년 3월 11일 (아프리카 집단군 총사령관으로서)
사보이아 군사 훈장 대십자장1941년 5월 11일
사보이아 군사 훈장 기사 대십자장1942년 여름
이탈리아 무공 금장1942년 2월
이탈리아 별 훈장 기사 작위1942년 2월


10. 참고 자료 및 관련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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